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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상표와 식별력

– 색채상표의 등록요건으로서의 식별력에 관한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판결 –

소비자들은 특정 색채를 접함으로써 어떤 상품이나 기업을 연상하기도 한다. 가령, 흰 리본을 두른 민트 색상의 보석 상자(Robin’s egg blue box)는 미국의 명품 보석 브랜드인 티파니(Tiffany & Co.) 사를, 하이힐의 빨간색 구두 밑창(Lacquered red sole)은 프랑스 명품구두 브랜드인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사를 떠올리게 한다. 티파니 사의 민트색 상자나 크리스찬 루부탱 사의 빨간색 구두밑창은 모두 미국 특허상표청에 의하여 색채상표(color trademark)로 등록되었다. 이처럼 어떠한 색채가 반복적으로 기업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경우에, 기업은 자사 고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연상시키는 색채를 중요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즉, 일정한 ‘식별력(distinctiveness)’을 갖춘 색채는 기업 혹은 상품을 나타내는 ‘상표’가 되기도 하는 바, 우리나라 상표법 또한 단일색채나 색채의 조합이 (i)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취득하였고, (ii) 비기능적이며, (iii) 색채도면으로 특정할 수 있다면, 이를 상표로 등록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5).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등록된 단일색채상표는 젤리 제조사로 유명한 독일의 제과회사 Haribo Group의 자회사 Rigo Trading S.A.가 출원한 것으로, 젤리 제품포장지에 사용된 색채가 상표로 등록된 경우이다. 위 색채상표는 오랜 기간 소비자들에게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상표등록요건으로서 ‘사용에 의한 식별력’ 요건이 출원 전 충족된 경우였다.

그런데 최근,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갖추지는 못하였으나 상품포장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색채 또는 색채의 조합이 본질적으로 식별력을 갖추어 상표 등록될 수 있는지에 관한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이 등장하여, 이를 소개한다. In Re: Forney Industries, Inc., No. 19-1073 (Fed. Cir. Apr. 8, 2020).


미국의 금속용접 및 제조도구 판매사인 Forney Industries, Inc. (이하 “포니 사”라한다)는 검은색 배너와 노란색 및 빨간색의 계조(階調)로 이루어진 색채상표(color mark)를 출원하였다. 당시 위 색채상표는 ‘사용에 의한 식별력(acquired distinctiveness or secondary meaning)’을 갖추지는 못한 상태였다.

이에, 미국 특허상표청의 상표심사관이 포니 사가 출원한 색채상표는 본질적으로 식별력을 갖출 수 없다(the proposed mark is of a type that can never be inherently distinctive)는 이유로 주등록부(Principal Register)에의 등록을 거절하였다. 위 거절결정에 대하여, 포니 사는 자사의 색채상표를 제품디자인(product design)이 아닌 제품포장(product packaging)을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제품포장을 위한 색채상표는 본질적으로 식별력을 갖출 수 있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미국 상표심판원(Trademark Trial and Appeal Board: TTAB)에 불복심판을 청구하였으나, 상표심판원은 색채상표는 그것이 제품디자인인지 제품포장인지를 불문하고 본질적으로 식별력을 갖출 수 없다는 이유로 포니 사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즉, 상표심판원은 포니 사의 불복심판청구를 기각한 심결에서 (i) 색채에 기반한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는 그것이 제품디자인(product design)인지 제품포장상표(product packaging marks)인지를 불문하고 본질적으로 식별력을 갖출 수 없으며, (ii) 색채로 된 제품포장상표는 그것이 명확한 주변부 도형이나 경계선(well-defined peripheral shape or border)에 의하여 한정되지 않는 한 본질적으로 식별력을 갖출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포니 사는 위 상표심판원의 기각 심결에 불복하여 다시 연방항소법원(the Court of Appeals for the Federal Circuit)에 심결취소소송을 제기하였는바, 연방항소법원은 포니 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아래와 같은 이유로 상표심판원의 심결을 취소하였다.


연방항소법원은 상표심판원의 판단 (i)에 대하여, 색채상표가 제품포장에 사용된 경우에는 그 상표의 색채 디자인 성격에 따라 본질적인 식별력을 갖출 수도 있으므로, 위 판단 (i)은 오판이라고 보았다. 연방항소법원에 따르면, 미국연방대법원은 제품포장에 사용된 색채상표가 본질적으로 식별력을 법률상 당연히(as a matter of law) 갖추지 못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없다. 또한, 단일색채상표에 관한 대표적 미국연방대법원 판례인 Qualitex 판결은, 어떠한 색채가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취득한 경우에 그 색채를 상표라고도 볼 수 있다고 판시하였을 뿐, 어떠한 색채가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취득하지 않는 한 상표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을 명시적으로 내린 바 없다고 한다. Qualitex Co. v. Jacobson Prod. Co., 514 U.S. 159 (1995).


한편, 상표심판원의 판단 (ii)에 대하여 연방항소법원은, 트레이드 드레스에 관한 대표적 미국연방대법원 판례인 Wal-Mart 판결이 “제품디자인 트레이드 드레스(product design trade dress)는 본질적으로 식별력을 갖출 수 없다”고 판시하였을 뿐이라고 판단하였다. Wal-Mart Stores, Inc. v. Samara Bros., 529 U.S. 205 (2000). 나아가 연방항소법원은, 제품디자인의 경우와는 달리, 제품포장에 사용된 색채상표(color marks on product packaging)는 본질적으로 식별력을 갖출 수도 있으므로, 위 판단 (ii) 또한 오판이라고 보았다.


위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은 상표등록요건으로서의 식별력과 관련하여, 제품포장으로서의 색채상표와 제품디자인으로서의 색채상표를 구분한 후, 상표등록요건으로서의 식별력 판단기준을 전자의 경우에 완화하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일색채상표와 관련하여 사용에 의한 식별력 요건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판례가 매우 드문 한편, 색채상표와 같이 디자인적 요소 또한 포함된 상표의 경우 디자인적 요소가 상표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주로 다루어져 왔으나(대법원 2002. 12. 22. 선고 20068 판결; 대법원 2000. 12. 26. 선고 982743 판결 등 참고), 색채상표등록과 관련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국내외 추세를 고려할 때, 위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은 우리나라 상표법상 색채상표의 식별력 요건 판단기준에 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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